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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일씨 탈출 가족 쿤사 호몽에서 망명 정리

SUN 2022. 2. 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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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일 미얀마 쿤사 망명 과정 이야기


일반인은 대부분 모를 미얀마의 몽타이 군의 수장이자 마약왕이라고 불리는 쿤사가 있었습니다. 남의 일도 아닌 머나먼 타국의 일이지만 이 마약왕국에 있던 한 한국계 인물이 있었습니다.

문충일씨가 있었던 쿤사 지역이란?


쿤사는 문충일씨가 있던 지역을 점거했던 사람의 이름입니다.

쿤사는 어릴 적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당시 중국은 공산 정권을 이루고 이에 쫓겨난 중국의 국민당의 장교가 미얀마로 피신을 오게 되고 그때 만난 장교와의 인연으로 체계적인 군사 교육을 받은 후 국민당의 잔여군들과 함께 자신만의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미얀마에서는 소수 민족들은 탄압에 저항하는 샨족이란 조직이 있었습니다. 이때 샨족의 군대와 연합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지도자 급이 되었습니다.

큰 군부를 거느리고 있는 쿤사가 해당 군부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했던 산업은 다름 아닌 헤로인과 아편이라는 마약이었고 베트남 전쟁까지 겹치던 시대적 상황으로 미국과 동남아 지역에 수많은 마약을 판매했습니다.

이 당시 미국에 있는 헤로인의 절반 가까이가 쿤사에게서 나온 말이 돌만큼 사업의 규모는 그야말로 대단했고 이로 인해 쿤사의 별명이 마약왕으로 불리게 되었던 이유입니다.

당시 쿤사에게서 나오는 군대의 세력은 민병대까지 포함하여 약 30,000명 각종 뇌물을 주면서 태국 정보국과도 우호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몽타이군을 만들어 생활했습니다.

당시 쿤타의 재산 및 이익은 100억 달러로 추산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군사 장비를 사들이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문충일씨 쿤사 지역 교사생활 및 탈출 과정


당시 상황을 볼 때 미얀마 태국 내에서 쿤타의 입지는 강력했으며 마약 산업도 활발히 했던 탓에 쿤사가 지키고 있는 지역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충일씨는 쿤사 지역에서 4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해서 쿤사의 세력이 어떻게 마약을 거래하는지 그리고 그 돈으로 무기를 어떻게 사고 파는지에 대해 낱낱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문충일씨가 쿤사 지역을 탈출하려 하자 자신들의 범죄 행위들이 낱낱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문충일씨를 찾아내려 하면서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미얀마와 태국에 뇌물을 바친 쿤사였기에 쿤사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미얀마와 태국의 어느 지역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 국적이 없던 한국계 문충일씨, 한국의 도움


문충일씨는 북한에서 태어나 만주로 떠났지만 당시 부유한 집안이었던 문충일씨 가족을 공산당은 잡아들이려 해서 아버지는 서울로 떠나게 됩니다.

이후 문충일씨는 중국의 팔로군에 자원입대를 하였지만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형들은 북한군으로 귀속되게 되면서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들통이 나게 되었고 이적죄로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문씨는 이후에도 천안문 사태에서 대규모 검거에 외국인과 접촉이 있어서 수배 대상에 오르게 되었고 당시 천안문 상태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처럼 문충일씨도 잡히면 처형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에 미얀마에서 당시 무법지대로 있었던 쿤사 지역으로 가서 중국인으로 위장을 해 교사 활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곳의 교장 또한 쿤사 군부의 핵심 관계자였으며 교사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 마약 군사 조직의 실체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망명 요청에 94년 문충일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한국 대사관에서 UN과 긴밀히 합의하여 난민 허가서를 받게 되었으며 문충일씨를 성공적으로 귀국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출처/ KBS 뉴스


지금으로서는 많이 낯선 듯한 이야기지만 고작 이제 고작 30년쯤 전의 일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문충일 씨, 그가 무사히 미얀마 쿤사 지역에서 탈출해 조국의 품에 정착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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