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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쿠데타에 성공한 왕 세조 업적과 세조 피부병

SUN 2021. 12. 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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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로 왕이 된 세조

조선의 7대 국왕이자 우리에게 세조로 잘 알려져 있다. 왕이 되기 전의 호칭은 수양대군 이었는데 조카인 단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자 자신의 측근 한명회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당시 섭정을 맡던 김종서는 살해당하게 되고 이에 성공하여 자신이 왕에 오르게 되고 단종은 그걸로 폐위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명분없이 왕위를 빼앗은 탓에 반발한 신하들이 많았다. 우리에게 생육신과 사육신으로 알려져 있는 신하들은 자신의 벼슬을 버리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게 되었다. 

세조의 초상화

하지만 세조가 왕위를 창탈했다곤 하나 단종시절 왕위는 거의 바닥을 향하였다고 한다. 야사에서는 신하가 어린 단종에게 혼을 내자 단종이 그만 울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왕위가 떨어진 시점에서 세조가 왕위를 창탈함과 동시에 왕권은 이전보다 강하게 유지될 수 있어 그는 강한 왕권으로 정치를 했다. 

 

하지만 그를 뒤엎을 실또한 존재하는 왕이기에 후대의 평가는 의견이 갈리게 된다. 단종을 귀양보낸 후 죽인 것은 패륜이나 다름없는 행위이고 이에 반대한 사육신또한 잔인하게 형을 처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폭군의 이미지랑 부합한다.

 

 

세조의 업적

6조 직계제 시행 

-왕의 권한을 극도로 끌어올린 정책으로 현재의 대통령과 비슷하지만 더욱 강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전의 체계는 의정부의 3정승을 통해 왕에게 보고가 올라가면서 정승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6조 직계제는 정승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왕에게 보고가 올라가면서 정승의 권위는 떨어지고 왕권은 크게 강화한다. 조선이 패망의 지름길로 간 이유가 세도정치로 인한 왕권의 추락임을 고려한다면 이 6조 직계제는 강한 왕권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육신의 본거지였던 집현전을 폐지, 중앙집권에 저해되고 이시애가 난을 일으킨 본거지인 유향소 폐지, 경연을 폐지하면서 세조때의 왕권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학문의 발전 : <경국대전> 편찬

- 많은 학문적 발전을 기여했지만 그중에 가장 크게 치는건 <경국대전>의 편찬이다. 경국대전의 조선의 법전으로 오늘날 형법의 조문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후대 왕들은 이 경국대전을 바탕으로 사건이 일어나면 처리하면서 쿠데타로 정국이 불안한 상태에서 이런 법전을 편찬하며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계속해서 수정을 거치면서 성종 때 비로소 조선만의 법전 경국대전이 완성된다. 또한 <법화경> <금강경> 같은 불교 대장경을 인쇄하여 시중에 뿌리는 등 불교 신자 답게 불교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왕이다. 

 

경제 향상 : 직전법 시행, 행정기관 개편 

- 이전의 조선시대의 관료들에 대한 토지 분배는 과전법으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의 과전법을 모티브해온 것으로 퇴직한 관리와 현직 관리 모두에게 토지를 분배하면서 토지 부족과 과전의 세습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그에 따른 폐단을 막고자 직전법을 시행하면서 오직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분배하게 되면서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신하들의 권한을 줄이면서 국가 재정을 강화하게 되었다. 

 

또한 행정기관을 개편하면서 더 정교한 세금 제도를 구축했다.

이전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향,부곡,소의 행정 제도를 폐지하게 된다. 양민들과 다른 더 낮은 주민들이 모여사는 곳을 부곡 소 라고 부르면서 이들에게 노비, 천민의 신분으로 차등을 주던 제도였는데 이것을 없애며 오가작통법이라는 제도를 신설한다. 

 

오가작통법이란? 

5가구 = 1통 , 5통 = 1리, 3~4개의 리 = 1면

이렇게 나온 1면 당 세금을 걷게 되었다. 이는 지금의 ~리, ~면, ~시의 개념과 비슷하다.

 

이로인해 이전의 세금의 납부보다 훨씬 수월해 지고

만약 도망가는 자가 있다면 같은 통이나 리의 주민들이 세금을 대신 물어야 하게끔 하면서 안정적인 세금 납부 제도로 가져오게 되었다. 

 

 

과거 단종을 죽인 것에 대해 후회를 하듯 말년에는 절을 다니며 죄를 뉘우치며 지냈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피부병으로 결국 세상을 뜨게 되었다.

세조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 옷에 고름과 피가 묻어있다.&amp;nbsp;

조선의 왕 중 재임기간 중 많은 업적을 쌓기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세조는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조의 왕위 찬탈은 물론 정당화받기 어렵겠지만 수많은 업적을 남기며 후대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분명 업적으로 볼 때 타 왕에 비해 분명 좋은 업적을 남긴 왕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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