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관련 포스팅/조선시대

조선 성종 업적 및 정책 성군의 표본이자 군주의 모범

SUN 2021. 12. 12. 14:54
반응형

조선 9대 왕 성종

즉위 1469년 당시 11세
재위기간 1469년 ~ 1495년 ( 향년 37세로 승하 )

한명회의 권력 속에서 왕이 된 성종

성종의 선왕은 예종이다. 그는 재위 단 1년 2개월 만에 승하를 하게 되고 이에 후계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조선의 왕위를 잇는 정통성은 선왕의 아들이 잇는 것이 마땅하다. 예종은 두 아들또한 존재 했고 그 두 아들이 당연히 성종보다 정통성이 있었고 성종에게 예정은 단지 삼촌 뻘이므로 사실 왕이 될 가능성이 적었다.

하지만 당시 예종의 아들은 불과 5살 밖에 안되는 어린아이였고 예종 또한 자신은 왕이될 수 없는 신분인데 당시 세조가 단종같이 어린 왕이 오르면 자신처럼 반란을 일으킬 것을 염두해 예종을 왕위에 올렸다. 이와 같은 논리로 월산대군이 왕위를 받는 게 그나마 적당해 보였다.

하지만 당시 세조때 공신이었던 한명회자신의 세력을 왕에 올리고자 했고 한명회의 사위인 잘산군 즉 성종을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예종의 양자로 입적하고 이렇게 성종이 왕이 된다.

이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하고 정치욕이 없었을 뿐더러 당시 한명회의 권력은 막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월산대군과의 우애

-당시 조선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 그 이외 형제들의 생애는 다소 불행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자신의 형이 왕이 되지 못했을 때는 반란의 명분이 분명하기에 싹을 자르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종은 인품이 워낙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 또한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술로 인한 문제를 벌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노비들한테 조차도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지 말라고 할 만큼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덕분에 이 둘의 우애는 아주 돈독했다고 한다.

성종의 업적

  • 국가의 예법의 절차를 적은 <국조오례의> 완성
  • 단군 조선부터 삼국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삼국사절요> 완성
  • 과거의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의 시를 모아놓은 <동문선> 편찬
  • 조선의 지리를 기록해 놓은 <동국여지승람> 완성
  • 조선의 기초되는 법전 <경국대전> 완성 및 반포
  • 신라~고려시대의 역사 <동국통감> 편찬
  • 조선시대의 의식,악보를 정리해놓은 <악학궤범> 편찬
  • 학술연구기관인 홍문관 재건
  • 두 차례 여진 정벌 전투 성공
  • 관수관급제 시행 (이전 지방 관리가 조를 거둔 것에 반해 국가가 직접 조를 거두어 지급, 국가의 토지지배권 강화)

성종이라는 묘호의 뜻은 "백성을 편안케 하고 정사를 세운 것" 이라고 시법에 나와있다.

성종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군이었으며 당대 신하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많은 책을 완성해냄과 동시에 원만한 왕권을 바탕으로 군사력 또한 증강시킨 왕이다.

또한 세종처럼 학문을 즐겨하며 군주의 모범이라고 당시 선비들에게 칭해질 만큼 인품이 좋은 왕이자 해당 시기에 조선의 제도가 완성되었으며 국력도 임진왜란 전 가장 좋았을 때고 여겨진다.

성종의 성품

-당시 실록에 따르면 천성이 뛰어나면서 학문을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은 유교에서 가장 좋아할만한 왕이었다.

임금이 되어서도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지 않으며 유흥을 멀리하고 신하들을 자신의 밑 사람이 아닌 예우해주면서 형벌을 신중하게 검토해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 성종의 성품을 증명하듯이 성종이 승하한 후 신하들이 앞장서서 묘호를 무엇으로 정할지 논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질인(仁) 과 이룰 성(成) 중 더 높은 묘호에 해당되는 성종으로 결국 붙이게 되었다.

자식 부자였던 성종, 12명의 왕비

성종은 25년의 재위 기간 중 12명의 왕비,후궁과 자녀는 무려 16남 12녀를 얻었다. 이는 조선의 3대 왕이었던 태종(이방원)보다 단 1명 적은 숫자임과 동시에 성종은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승하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조선의 왕 중 압도적인 숫자이기는 하다.

또한 실록에 나와있는 재미있는 사실로는 동물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공작, 백조, 원숭이 까지 궁전 안에서 기를 정도였다고 한다..

성종의 아들, 연산군

이런 성종은 적당한 재임 기간과 원만한 국정을 바탕으로 태평성대라고 불릴 정도의 안정적인 조선을 이끌어 낸 왕이다. 사실 이 때 까지만 해도 세조,예종 다음의 왕이었기에 왕권이 중요시되었다.

세조 때 줄어들었던 경연을 성종은 다시 활성화시키고 학문을 중요시하여 게을게하지 않았으니 신하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종 이후 연산군이라는 조선 시대 사상 초유의 신하들에 의해 왕위를 쫓겨나는 폭군이 탄생하게 되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성군와 폭군의 만남, 부자지간이 어찌나 이렇게 상반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폐위된 왕 연산군 업적 및 무오사화 갑자사화

조선시대 제 10대 국왕 연산군 재위기간 : 1494년 ~ 1406년 약 13년 연산군(燕山君) 한자의 뜻도 의미있는게 제비연이지만 당시 놀 연 으로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기를 좋아하는 것이 가만히 있

ungung1.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