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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북벌정책 등장 배경 및 찬성 반대 의견 정리

SUN 2022. 2. 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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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북벌 정책의 배경 


가장 큰 이유는 병자호란으로 조선의 국토가 황폐화되었던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병자호란 이후 삼전도에서 인조는 치욕적인 동맹을 맺으며 그에 따라 소현세자와 효종은 청나라로 끌려가게 됩니다.  소현세자는 그곳에서 청나라에 우호적이었지만 효종은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효종이 왕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청나라를 정벌하자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훈련도감에 군액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군대를 개편하고 훈련을 강화했습니다.

 

당시 청나라의 국력을 볼 때 땅의 크기만 해도 조선의 수십 배에 달하는데 이런 북벌 정책은 실효성의 논란을 두고 신하들과 계속되는 대립을 가지다 결국 효종이 승하함에 따라 무산이 되게 됩니다. 

북벌론에 대한 찬성측 의견 ( 북벌론 ) 


조선의 입장에서 청나라는 단지 북방의 오랑캐였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가 쇠태 해짐과 동시에 후금이었던 청나라가 갑자기 세력이 거대해졌습니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를 섬겼으며 임진왜란 때도 명의 지원을 받아 임진왜란을 이겨 낸 만큼 명분을 중요시하는 성리학의 관점에서 우리가 싸워서 질지언정 명나라의 은혜를 갚고 오랑캐의 수치를 되갚자란 의견이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때 치욕은 전무후무한 왕이 머리를 조아리는 수치 중에 수치였을 만큼 당시 조선에서 병자호란은 오랑캐에게 굴복했다는 크나큰 상처로 남아 있을 시기였습니다. 

 

북벌론에 대한 반대측 의견 ( 북학론 ) 


조선은 그 당시 임진왜란과 더불어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겪으면서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한 시기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직 나라가 정비되지도 않은 시기였습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만약 패배했을 때에는 종묘사직뿐만 아니라 백성의 삶 나아가 나라의 존망의 위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북벌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중국의 정세또한 조선에겐 좋지 않게 흘러갔습니다. 결국 청나라가 명나라를 쓰러트리게 되고 중국을 통일함으로써 그에 대한 승산이 매우 부족해 보이게 되면서 결국 북벌 정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효종이 추진한 만큼 그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는 하지 못하고 찬성하는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 많았지만 명분을 중요시하는 조선에선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고 이는 효종 사후에 북벌론의 입지가 상당히 줄어들면서 흐지무지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관점에서 북벌론의 가능성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 북벌론이 성공하면 그 의미가 크긴 하지만 당시에 두 번의 전쟁을 치른 상태에서 국력이 매우 쇠약해져 있을 당시 전력을 다해서 끌어모아도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역사가 모르는 것이 청나라와 명나라와 대립 중일 때 만약 전쟁을 일으켜서 승리했다면 조선의 입지 및 국력 또한 매우 강대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길 시 이득과 명분이 큰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조선은 청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다 실학이 발달되고 북학파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전쟁인 만큼 북벌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종묘사직과 나라를 지키는데 큰길이었으나 병자호란의 아픔은 우리의 가슴속에 계속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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